메뉴 건너뛰기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교수가 옥스퍼드 채플에서 강연을 마쳤을 때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교수님,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정말 존재한다면 왜 인간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허락하십니까?” 이에 루이스 교수는 그렇지 않아도 교만한 인간인데 고통마저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더 교만하겠는가? 고난과 고통이 아니었더라면 예수를 믿을 수 없고, 고통이 아니었더라면 기도를 배우지 못할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는가?”라고 대답했습니다.

19세기 후반 미술사의 격변기를 살았던 대가 중 프랑스의 르누아르는 비극적인 주제를 그리지 않은 유일한 화가입니다. 그는 화려한 빛과 색채의 조합을 통해 5,000여 점에 달하는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삶의 어둠 대신 기쁨과 환희의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말년에 그는 육체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두 아들은 전쟁에서 큰 상처를 입었고, 그 또한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으며, 손은 점점 심하게 뒤틀렸고, 급기야 손가락에 붓을 묶어서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절망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찬란한 햇빛 속에 비친 아름다운 세상을 그렸고, 행복을 노래하는 작품들을 그렸습니다. 소박한 여인들, 귀여운 아이들, 일상 속에서 온화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 초기 그의 그림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고통 속에서 그린 세월의 작품들은 대작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숱한 불면의 밤을 고통으로 지새우면서도 붓을 놓지 않으며 찬란한 행복을 그려 내려갔던 빛의 화가, 르누아르. 절망과 좌절, 고통이 오히려 그의 그림을 더욱 깊이 있고 값지게 만들었습니다.

19세기 독일의 무신론 신학자요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목회자였고 자신도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적 회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은 죽었다라고 말하며 정신병 발작을 일으킨 후 완전히 정신 상실자가 되어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C.S. 루이스는 어머니와 아내가 암에 걸렸을 때 기도하였지만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심한 고통이 있었지만 절망과 회의의 늪에 빠진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해 십자가로 더 가까이 가서 부활의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통과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며 믿음으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도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고백합니다.

고통스런 환경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극복하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몫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히 12: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오늘하루열지않음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