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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의 한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참담한 교권 침해와 추락을 넘어 전체 공교육의 근본적인 개선과 교권 회복에 대한 사회적 공론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오늘 우리의 신앙교육은 어떤지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보아집니다.

신앙도 그렇지만 교육도 관계로부터 출발합니다. 좋은 관계 속에서 건강한 교육의 체계가 형성됩니다.

교사는 학생을 잘 지도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방의 굳은 마음을 어떻게 풀어주어야 하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닫힌 마음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마음이 닫혀진 상태로는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얼어붙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때에라야 상대방의 열린 마음으로 가르침이 담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MIT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공부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장난꾸러기요, 말성꾸러기였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이던 어느 날 그는 어쩌다 산수 시험에서 90점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 아이로선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는 너무 기쁜 나머지 산수 시험지를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펼쳐 들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이는 기쁨에 차서 집의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문을 열어주던 아이의 어머니가 산수 시험지를 펄럭거리며 유난히 어깨를 편 아들을 보고 물었습니다.

그게 뭐니?”

아이는 시치미를 떼면서 시험지를 내보였습니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가슴이 신나고 기쁜 감정으로 넘치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들을 끌어안으며, “아이고 우리 아들 얼마나 신나! 엄마가 이렇게 기쁘고 좋은데...”라며 칭찬해 주었습니다.

아들의 기분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후로도 부모로부터 끊임없이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언어, 아이의 기분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언어를 들으면서 자란 아이는 마침내 세계적인 대학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그의 어머니가 됐다,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하며 아이의 기분을 묵살하는 언어를 썼거나 ‘100점도 아니고 겨우 90점 가지고 뭘그래!“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면 아이는 자신에 대한 긍지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며 또한 성장의 도약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같이 가슴의 언어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고 좋은 관계를 형성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강력한 언어가 있습니다. 바로 혼의 언어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영의 존재자입니다.

인간은 입으로도 의사소통을 하지만 혼으로도 의사를 전달하는 존재입니다. 혼은 우리의 전 존재를 통해 말을 합니다. 혼은 얼굴, , 몸 전체를 통해서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를 전달합니다.

누군가가 환한 웃음으로 다가오면 자신이 그에게 의미 있는 존재임을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가 살며시 몸을 기대어 오면 그에 대하여 막연한 친근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혼의 교류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혼의 교류는 놀라운 변화를 일으킵니다. 혼의 언어의 적절한 사용은 서로의 관게를 회복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이 언어는 순간적으로 꾸며낼 수 없으며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땅의 어그러진 교육이 바르게 세워지기 위해서는 관계중심적인 교육으로 재확립되어야 하고, 그 교육의 근간인 신앙의 교육으로 새롭게 발돋움해야 교육의 온전한 회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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