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비혼출산 문제에 대하여

2021.05.05 00:07

샬롬 조회 수:18

  조세희 선생이 1976년에 발표한 소설인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제목에 빗대어 사유리 씨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라고 할 수 있는 비혼 출산의 문제는 우리 사회 안에서 상당히 오래 동안 꿈틀대던 문제를 사유리 씨가 실천하여 지금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膾炙)되고 있다. 음성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있을 터인데 사회적 정황이나 법적인 문제 때문에 공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사유리 씨가 자신이 출생한 나라인 일본에 가서 정자 은행을 통해 정자를 기증을 받아 임신하고 출산하여 자녀를 키우면서 많은 사람들을 자극하고 있다.

 

  이 문제에 특히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혼인은 하고 싶지 않은데 (이 경우 대개는 자기 나름의 자유로운 삶이 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아기는 가지고 싶은 여자 분들과 여성 동성애자들이 가족으로 살면서 혹시 자녀를 이런 식으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다. 전자의 경우는 동성애와는 상관이 없고 그저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여 살기가 싫어 스스로 비혼(非婚)을 선택한 경우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여성 동성애자들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어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몰론 남성 동성애자들이 가족으로 살면서 이를 원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 경우에는 자신들의 정자를 어떤 여성의 난자와 시험관으로 수정하는 일과 그렇게 수정된 수정란을 자궁 속에서 9개월 동안 키워 줄 소위 대리모(surrogate mother)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더 많은 문제를 내포하게 된다.

 

  핵심적인 문제는 혼인의 테두리 밖에서 자녀를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겠다는 의지와 그렇게 하려는 실행력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과학 기술과 이를 위한 법적인 제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유리씨와 같은 임신과 출산은 엄격하게 말하면 불법은 아니라고 해도 국내에서 이와 같은 임신과 출산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들 생각한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사용하는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정자 공여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국내 병원에서 비혼 여성이 정자 기증을 받아 출산하기는 공식적으로는 상당히 어렵다. 대개 의료인들은 나중에 시술행위 등과 관련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윤리지침대로 시술하지 않은 책임 문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지침을 어겨가면서까지 비혼 임신 시술에 나서는 의사는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유리 씨는 일본에 가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이 문제 때문에 이런 경우에도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려는 일이 조만간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도 혼인하지 않고서 공식적으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만연한 상황에서 이렇게라도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격려해야 한다고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어서 이것은 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그저 이 사회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윤리는 그 어떤 명확한 답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제정하고 스스로 찾아보려는 윤리는 사회와 상황에 따라서 다 상대적인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제시하는 윤리는 아무리 절대적 윤리를 말한다고 해도 다 상대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배제하고 우리들의 윤리를 찾으려던 윤리학은 이미 20세기 초에 윤리학 이후를 말하는 메타윤리학(meta-ethics)을 말하고 그런 것 중의 아주 솔직한 입장이 윤리적 언명은 그저 정의(情意)적 감정의 표현이라고 주장하던 소위 정서(情緖)주의(emotivism)로 나타났고, 20세기 중반부터는 이런 것을 윤리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고 진리 문제에도 적용하여 소위 현대-이후 사상(post-modernism)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생각에 의하면 절대적인 것은 절대로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결국 사람들은 온갖 이상한 생각과 실천에로 나아간다. 얼마나 이상하게 나갔느냐를 가지고 그들끼리 격렬하게 논쟁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 이른 바 오백 보, 백 보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경이 자증(自證)하는 하나님을 인정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성경이 자증하는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대로 생각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성경이 말하는 대로 규정하려고 하게 된다. 사실 이것이 성경이 자증하는 하나님을 받아들인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이다. 하나님은 인정하되 나머지는 우리 스스로 규정해 보겠다는 것이나 하나님조차도 우리 방식대로 규정하겠다고 하는 것은 결국 성경이 말하는 그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의 삶 전반에 대해서도 성경이 말하는 대로 생각해야만 한다. 따라서 혼인 제도도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것이라고 하며, 자녀를 낳는 것이나 그 양육도 성경이 규정하는 것을 중심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혼인하여 풍성한 혼인 관계를 가지도록 하셨다. 우리는 이 남편과 아내 관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타내도록 하신 풍성한 인간의 삶의 중요한 측면을 향유하고 드러내며, 그런 관계성을 자녀들이 본 받아 그들도 성장하여 한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법을 따라 혼인하고 또 다른 아주 독특한 가정을 만들어 내며 그렇게 삶으로 이 세상의 놀라운 문화를 드러낼 책임을 가지는 삶을 사는 사명을 가진 것이다. 이점이 매우 중요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의 혼인 관계, 성 관계, 가족 관계, 그와 함께 있는 풍성한 문회를 나타내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인간들은 타락한 이후에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매우 다양하게 해 왔다. 부부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온전한 연합을 드러내지 않고 서로를 비난하는 관계성을 나타내는(3:12) 것을 비롯해서 일부 이처(polygamy)의 모습이 시도되는가 하면(4:19), 혼인에서 하나님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일이 일반화되었다(6:2). 결과적으로 다양한 음란성이 드러나고, 간음도 있고, 심지어 하나님 백성들에게도 모든 방도를 사용하여 자녀를 얻으려는 일도 아주 일반화되어 가족 관계가 파괴되기도 했다(16). 그런 일들 중의 하나가 오늘 날 우리들이 목도(目睹)하고 있는 비혼 출산을 생각하는 일이다. 이것이 그저 혼인하지 않고 자녀를 얻어 키우려고 하는 것이거나 동성애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자녀들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든지 결국 이 모든 것은 마음속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모시지 않은 결과의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규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방도대로 자녀를 얻어 양육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그런데 특히 이 비혼 출산은 자신들이 나름대로 행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있게 된 자녀들을 생각할 때에 좀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소설 홍길동의 경우와 같이 혼인 관계 밖에서 자녀가 출산한 경우에 그 아이들이 자신의 잘못이 없이 상당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평생 불평등을 감당해야 한 것과 비슷하게, 자녀가 어릴 때는 모르지만 성장한 경우에는 자신이 상당힌 다른 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 아이가 받을 상처와 어려움을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자녀를 키우고 싶어서 그 아니가 받을 상처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기에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그러므로 이 사회에서 가족을 어떤 특정한 형태로만 제한하여 생각하지 말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고 나름대로는 인도주의적 동기에서 그런 방향으로 애를 쓰는 사람들이 온 세상과 우리나라에도 점차 늘어 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인간이 어떻게 혼인하고 살며 자녀를 낳고 양육하면서 어떤 문화를 드러내라고 하셨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혼 출산이라는 이 독특한 문제의 성격을 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는 방향의 하나임을 잘 파악하고, 그런 모든 것에서 돌이켜 참 하나님께로 오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이런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귀한 일이다. 이렇게 사람들을 정상적이고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오래 전에 주께서는 다니엘 선지자를 통해서 이미 이렇게 선언하셨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12:3). 부디 우리가 이런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성경을 따라서 바르게 판단하고 이런 옳은 가르침에로 많은 사람들이 돌이키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출처 : 코람데오닷컴(http://www.kscoramdeo.com)

오늘하루열지않음 [닫기]